30초 요약

  • 명의를 빌려준 사이라도 대출까지 승낙한 것은 아닙니다. 승낙의 범위를 넘으면 컴퓨터등사용사기가 됩니다.
  • 피고인은 '경제공동체였으니 묵시적 승낙이 있었다'고 다퉜습니다. 카카오톡과 본인 진술로 승낙이 없었다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 처벌불원서가 이미 제출된 상태였지만, 작성 경위를 진정서로 밝혀 특별감경을 막았습니다.

가까운 사이에 통장이나 휴대전화, 인증서를 빌려주는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사업을 한다길래, 잠깐이라니까 건네주는 것인데요. 문제는 그 뒤에 벌어진 일이 내 이름으로 남는다는 데 있습니다.

명의를 빌려준 사실이 있으면 고소를 해도 소용없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대가 “허락받고 썼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승낙에는 범위가 있습니다. 카드와 휴대전화를 사업 용도로 쓰라고 허락한 것과, 그 명의로 금융기관에서 신용대출을 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런 사건의 승부는 “빌려줬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빌려줬는가”에서 갈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하루 만에 1억 2천만 원이 넘는 대출이 실행된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해 상대방에게 실형이 선고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 드립니다.

사건의 출발점

1. 하루 사이 1억 2천만 원이 넘는 대출이 실행된 사건

의뢰인은 상대방과 오래 교제해 온 사이였습니다. 상대방이 사업에 필요하다며 통장과 휴대전화, 신용카드를 빌려달라고 해 건네주었고, 공인인증서와 OTP도 함께 맡겨 두고 있었습니다. 사업 용도로 쓰는 것까지는 의뢰인도 허락한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범위를 넘어선 부분이었습니다. 상대방은 의뢰인 명의의 휴대전화와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여러 금융기관에 의뢰인 명의로 대출을 잇달아 신청했습니다. 단 하루 사이에 대출 합계가 1억 2천만 원을 넘었습니다.

대출금은 의뢰인 계좌에 들어온 뒤 곧바로 상대방 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의뢰인은 한참 뒤에야 빚의 규모를 알게 되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빚만 의뢰인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쟁점

2. "경제공동체였으니 묵시적 승낙이 있었다"는 주장

상대방은 범행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논리는 이랬습니다. 두 사람은 경제공동체였고, 따라서 의뢰인의 묵시적 승낙을 받고 한 일이므로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컴퓨터등사용사기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죄는 정보처리장치에 권한 없이 정보를 입력해 재산상 이익을 얻었을 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든 법리는 명확했습니다. 타인의 승낙 없이 타인의 인적사항과 타인 명의 신용카드 번호·비밀번호 등을 입력하는 방법으로 금융기관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는 대출금융기관에 대한 컴퓨터등사용사기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25. 3. 13. 선고 2024도19846 판결).

결국 다퉈야 할 지점은 하나로 좁혀졌습니다. 승낙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디까지였는지.

대응 ①

3. 승낙의 범위를 기록으로 갈라낸 작업

의뢰인은 수사 초기부터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통장·휴대전화·신용카드를 건네주고 사업 용도로 쓰는 것은 허락했지만, 그 권한을 초과해 신용대출을 받는 것은 허락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출이 실행된 날의 경위도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그날 의뢰인은 돈을 빌려달라는 상대방의 요청을 오히려 거절했고, 대출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상대방 본인의 진술이었습니다. 상대방도 수사기관에서 그날 의뢰인과 함께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고, 나아가 “허락을 받고 대출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진술은 스스로 방어하려던 것이었지만, 의뢰인이 아닌 상대방이 의뢰인 명의의 카드·휴대전화·OTP를 이용해 대출을 실행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대응 ②

4. 승낙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화 기록

승낙의 부존재는 당시 오간 메시지로도 드러났습니다. 의뢰인은 대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뒤 상대방에게 항의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 내용은 처음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의 반응 그대로였습니다. 승낙하고 지켜본 사람이 보낼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법원은 의뢰인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고, 상대방이 승낙을 받지 않고 권한 없이 정보처리장치에 정보를 입력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처분 결과

5. 처벌불원서가 있었음에도 징역 8개월

이 사건에는 변수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의뢰인이 이미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제출한 상태였습니다. 상대방이 피해액에 비하면 적은 금액을 지급하면서 받아 간 것이었습니다.

사기죄 양형기준에서 처벌불원은 특별감경인자입니다. 그대로 인정되면 형이 크게 내려갑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말하는 처벌불원은 단순히 서면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피고인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합의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 상당한 보상이 이루어졌으며, 피해자가 그 법적·사회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면서 이를 받아들여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대법원 2020. 8. 20. 선고 2020도6965, 2020전도74 판결).

저희는 그 서면이 어떤 상황에서 작성되었는지를 밝혔습니다. 의뢰인은 당시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이어서, 상대방이 지급하는 소액의 합의금이라도 받기 위해 부득이 처벌불원서를 작성·제출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했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이 지점에서 갈렸습니다. 상대방은 묵시적 승낙을 주장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을 뿐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고 있고, 피해금에 비해 지급한 금액은 소액에 불과해 피해가 실질적으로 회복되기도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 지급 사실은 양형 요소로 제한적으로만 고려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선고는 징역 8개월이었습니다.

고소대리 변호사 판결문 1
고소대리 변호사 판결문 2
고소대리 변호사 판결문 3

정리

6. 명의를 빌려준 사건에서 고소대리가 하는 일

명의를 빌려준 적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상대가 “허락받았다”고 하면 수사기관도 그렇게 볼 것이라고 지레 판단하시는 것인데요. 실제로 수사기관과 법원이 보는 것은 승낙의 유무가 아니라 승낙의 범위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에서는 세 가지가 순서대로 정리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어떤 용도로 허락했는지, 문제 된 행위가 그 범위 안인지 밖인지, 그리고 그 경계를 보여주는 기록이 무엇인지입니다. 대화 내역과 계좌 흐름, 상대방 본인의 진술이 그 경계를 그리는 자료가 됩니다.

합의나 처벌불원 서면이 이미 오간 뒤에 사무실을 찾아오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서면이 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정에서 작성했는지가 기록으로 남으면, 그 서면이 양형에서 갖는 무게는 달라집니다. 다만 그 사정은 나중에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절차 안에서 서면으로 남겨 두는 편이 훨씬 강합니다.

명의를 빌려준 일로 본인 앞으로 빚만 남게 되셨다면, 사건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와 별개로 한 번쯤 고소대리 변호사와 본인 사건의 위치를 점검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명의를 빌려준 적이 있으면 고소해도 소용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승낙에는 범위가 있습니다. 카드나 휴대전화를 사업 용도로 쓰라고 허락한 것과, 그 명의로 신용대출을 받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허락한 범위를 넘어선 부분을 특정하는 것이 고소의 출발점입니다.

상대가 '묵시적 승낙이 있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하나요?

말로 반박하기보다 기록으로 깹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대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보낸 메시지와, 상대방 본인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 승낙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됐습니다.

처벌불원서를 이미 써줬는데 되돌릴 수 있나요?

서면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어떤 사정에서 작성했는지는 밝힐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소액이라도 받기 위해 부득이 작성했다는 진정서를 제출했고, 법원은 처벌불원을 특별감경인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피해금은 돌려받을 수 있나요?

형사절차는 책임을 확정하는 절차이고 회수는 별개입니다. 다만 실형이 선고되면 합의 협상의 조건이 달라지고, 민사와 채권 절차에서 쓸 수 있는 근거가 남습니다.

명의를 빌려준 사건, 승낙의 범위부터 갈라야 합니다